현실과 다른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

2012. 10. 23. 08:00푸른복지/복지와 인문사회

공생의 시대 - 복지국가의 어깨를 딛고 복지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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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지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 현실과 다른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 

- 정부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 삶과 생존을 위해 ‘복지’를 요구하는 국민 

- 복지로 한걸음 더 나아가려면

-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복지는 동시에 경제적 투자


2. 문명이 변한다

3. 공생, 복지국가, 복지사회

4. 문명은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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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다른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


과거에는 경제가 성장해도 대다수의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 돈이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에게 더 참으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국민이 희생하여 모은 돈으로 국가와 대기업이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잘 살아보자는 이야기로 우리 모두 참고 견뎌보자는 분위기가 많았고, 

또 참으라고 강요하는 사회 정치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제 성장을 지상 유일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면서 사회 정치 분위기도 바뀌었습니다. 

국민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경제가 성장하면 그 돈이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도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국민 소득이 증가하였고,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습니다. 


이 때야말로 국민이 복지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야 말로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라는 개념이 현실과 잘 맞았습니다. 


자세히 풀어보면 경제가 성장하면서 기업이 성장했고, 수입이 늘어난 기업은 일자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일자리가 늘어나니 대다수 국민 소득이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빈부격차는 크지 않았고 그만큼 중산층이 튼실했습니다. 


이와 같이 중산층이 튼실하니 안정적인 소비가 이루어졌고 

이는 다시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경제 성장이 일자리를 늘려 주었고 이로써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는 경제 구조였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국민의 삶과 생존을 유지하는데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과거의 경제 구조를 경험한 사람들은 흔히 ‘경제성장이 복지 확대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더 나아가 경제 성장이 진정한 복지다.’라며 주장합니다. 

경제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로써 국민의 삶과 생존이 나아지니 굳이 복지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일면 타당한 관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계속 되는 상황에서는 시장이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굳이 복지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점차 변화합니다.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라는 개념이 지금에도 유효할까요? 

과연 현실을 잘 설명하는 개념일까요?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입니다. 

백번양보 해도 이제는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개념입니다. 


현실에서 이미 시장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의 삶과 생존을 유지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소위 똑똑한 사람들만 수치를 들이대며 아니라 이야기할 뿐입니다.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라는 개념은 이미 현실에 적용 가능한 개념이 아닙니다. 

과거의 개념일 뿐 지금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개념입니다. 



경제 성장이 더 이상 국민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 대다수 소득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자리가 늘어나도, 과거에는 정규직이 대다수였으나 

이제는 비정규직, 계약직이 늘어나면서 노동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이로써 중산층이 무너져 버리고, 양극화 현상이 매우 심해집니다. 

이는 경제 성장으로 벌어들인 돈이 국민 대다수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시장, 대기업, 자본에 편중되기 때문입니다. 


경제 성장으로 얻은 대다수의 부는 일부 대기업으로만 흘러 들어갑니다.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흑자라며 축하할 일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기업으로 흘러간 부는 또다시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져도 대다수의 열매는 시장, 대기업, 자본으로 흘러갑니다. 

결국 이제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라는 연결고리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즉 경제가 성장해도 고소득 계층만 소득이 높아질 뿐, 중산층이 무너진 대다수 국민 소득은 악화됩니다.

더 이상 경제 성장이 국민 소득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 성장이 가장 좋은 복지라는 개념은 이제는 맞지 않습니다. 

관념 속에서나 존재하지 지금 우리 시대 사회에 적합한 개념이 아닙니다. 

경제 성장과 국민 소득 증가는 엄연히 다른 말이며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한술 더 떠 경제를 성장시켜 고소득층에 돈이 많아지도록 하면 

결국 국민에게 이 돈이 전달되면서 소득이 높아질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소위 낙수효과를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으로 오히려 세금을 줄이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감세 정책을 사용해서 조세부담률을 낮추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재분배 기능이 약화되면서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으며, 중산층이 더 무너져 국민의 삶과 생존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국민의 소비가 줄어드니 마침내 내수 경제 체질 또한 매우 허약해지고 취약해졌습니다.

너도나도 일자리를 잃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동네 치킨집 등 창업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동네에는 배달업종이 차고 넘쳐 완전경쟁 상태에 들어선지 오래입니다. 

한국처럼 집 앞만 나서면 식당이 즐비한 나라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창업도 이젠 죽지 못해 하는 성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의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일자리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니 ‘경제 성장은 곧 국민의 소득 향상’이라는 개념도 약해졌습니다. 

경제성장이 최고의 복지라는 용어는 사용 연한이 끝난 개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이론, 저런 이론을 아무리 들고 온다 하더라도 현실과 맞지 않는 이론이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해당 이론은 접어야 마땅합니다. 

만약 지금도 이를 주장한다면 현실에는 눈을 가리고 오직 관념 속에서만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은 외면한 채 조금 배운 지식으로 세상을 안다며 주장하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입니다. 

그 지식과 영향력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빚을 늘려 소비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만 이루면 복지는 필요 없다는 개념으로 정부는 어떻게든 소비를 늘려 경제 성장을 이루려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빚 권하는 정책입니다. 즉 대출, 부채, 채무입니다. 


흔히 경제 구조에서는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이것이 소비로 이어져 직원도 추가 고용하는 식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전반적으로 국민 대다수의 소득이 향상되는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중요한 것은 ‘소득’입니다.


하지만 현재 경제 구조는 전혀 다릅니다. 

사회가 양극화되고 질 낮은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 상황이 악화되었고 오히려 국민 소득이 낮아졌습니다. 

국민 소득이 낮아지니 쓸 돈이 없어졌고 소비를 줄이다 보니 국민 대다수의 소득은 전반적으로 더 낮아졌습니다. 


대신 고소득층에는 돈이 쌓였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100끼니를 먹을 수 없으니 이들이 아무리 소비를 늘려도 국민 소득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뚜렷해졌습니다. 

게다가 고소득층이 소비하는 돈은 서민 영역이 아닌 대기업 영역에 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결국 서민 소득은 여전히 낮은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사용한 정책은 ‘진정한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닌 임시방편을 썼습니다. 

바로 ‘빚을 늘려 소비’를 늘려 준 것입니다. 

돈을 벌도록 하여 소득을 늘려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빚의 한도를 늘려주어 빚으로 확보한 돈을 소비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정부도 빚을 지도록 하였고, 지방자치단체도 빚을 지도록 유도하였고, 국민 대다수도 빚을 지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국민들이 힘들다 대책을 마련해 달라 정부에 요청하면 정부는 ‘자~ 빚을 더 얻으세요.’하며 

빚 자격을 완화하여 더 많은 빚을 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대학생도 힘들다 하면 등록금을 완화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자금 대출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빚을 냈을 때는 당장 수중에 돈이 들어오니 돈이 늘어난 것처럼 느꼈습니다.

이 돈으로 소비도 늘렸고 이로써 반짝 경제 성장을 이룬 듯 했습니다. 

반짝 경제 성장 동안 정부는 경제가 살아난다, 일자리가 늘어난다, 역시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다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어떻게 되었습니까?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 합니다. 

게다가 대출 한도를 아무리 늘려준다 해도 소득을 넘어 무한정으로 빌려줄 수 없습니다. 


결국 빚으로 경제 성장한 듯 꾸며댔으나, 이제 갚아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버블 붕괴가 그러했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경제위기가 그러했고, 유럽의 재정위기가 그러하고, 

한국의 정부 부채, 공기업 부채, 지방자치단체 부채, 가계부채 위기가 그러합니다. 


이제 무리한 경제 성장 추구가 위기의 주범이 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이 국민 소득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는 줄어듭니다. 

국민 소득이 줄어드니 빚을 져서 소비했으나, 이제는 줄어든 소득에 부채까지 겹쳐 아무도 소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소비하지 못하니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없고 결국 경기 침체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로써 국민의 삶은 더욱 힘들어 지고 먹고 사는데 원한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 상황이 매우 구조적이고 오래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일 년 이 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으며, 결국 관심은 이것저것 다 무시하고 오직 ‘삶과 생존’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삶과 생존의 위협을 대신할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또 삶과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면 사람들의 요구는 더욱 강력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주체를 바로 정부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정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과연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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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2년 상반기 출판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만 출판하지 않고 인터넷에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