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된 연결이 낳은 당당한 극단성

2020. 8. 30. 18:58카테고리 없음

요즘 상식을 벗어난 사람 또는 집단을 보며

왜 저렇게 극단적으로 변했냐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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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상식적이었는데

그간은 여러 조건으로 인해 이를 억제하며 지냈다가,

이제는 조건이 달라져 성향을 당당하게 드러낸다고 본다.

 

즉 변한 게 아니라 드러낸 것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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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떤 조건이 변했는가.

 

느슨한 연결의 시대가 되면서

연결은 넓어진 반면,

관계는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듣기 좋으면 가까이하고, 듣기 싫으면 멀리한다.

유유상종으로 모여

스스로 편향된 세상을 만들어 갇혀 지낸다.

 

그런데 비상식도 전국으로 연결되면 규모가 꽤 커진다.

사람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본인이 옳다고 착각하기 쉽다.

더 나아가 다수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많다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많다고 무조건 다수도 아니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자신이 옳고 다수에 속한다고 착각하면,

굳이 자기 성향을 억제할 조건이 사라진다.

그렇게 극단성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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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단적이고 비상식적 주장을 하는 사람 또는 집단을 보면,

선민 또는 우월의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들끼리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외부에는 폐쇄적 배타적이라는 점이다.

 

이럴수록 타인에게 피드백을 받기 어렵거나

타인의 피드백을 애초부터 거부 또는 무시한다.

 

결국 자기가 만든 세상 속에 갇혀 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왕과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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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이란 많은 기회를 주지만,

다양성 없이 편향된 연결이란

유해할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