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부터 자율적일 때, 삶의 내용도 자율적일 수 있다.

2010. 2. 6. 10:34푸른복지/복지와 인문사회

 

현 사회의 발전은 과연 모든 측면의 발전인가?

 

현 사회는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한다.

더 많은 정보를 다루어야 하고, 이를 조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서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다들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더 길고 긴 학습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기가 만들어진 것이 그러하고,

평생학습의 시대가 그러하다.

 

(물론 평생학습이 평생 자신을 다듬는다는 개념이라면

이는 고전에서도 나왔던 것이니 인정하는 바이나,

지금의 평생학습은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적응 학습의 개념도 가지고 있으니,

이러한 측면에서의 평생학습을 말하는 것이다. )

 

 

하지만 이는 개인에게 지속적으로 더 높은 자생력과 적응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더 높은 자생력과 적응력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점차 많아지고 이들은 사회에 부적응했다는 식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농촌 사회에서는 장애가 있어도

조금 도우면 자생에 가까울수있다.

 

결국 개인의 부적응이라는 것도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져서

개인에게 부담을 더 크게 만든 측면이 적지 않다.

 

물론 사회는 발전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누군가는 필수적으로

낙오되고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임은 분명 직시해야 한다.

 

 

결국 현 사회의 발전이라는 것은

모든 측면의 발전이 아니다.

 

최소한 개인의 자율적 삶,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발전이 아닌 오히려 퇴보로 가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높은 기준을 따르는 삶에서 자기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자율적 삶을 살겠다는 목표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사회가 요구하는 더 높은 기준에 도달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할까?

대다수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고 이끄는 삶에

자신이 이끌려 간다. 

 

없으면 없는대로 기준에 도달하려 노력하고,

있으면 있는대로 계속 기준 위에 있으려 노력한다.

 

이래 저래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인지,

사회가 요구하는 삶에 이끌려 가는지

피곤한 삶을 산다.

 

이제는 자신이 왜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의미도 찾기 어렵다.

 

 

자율적 삶,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가능케 하는 "소박함".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삶인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 아닌,

내 삶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서 부터 내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자율적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더 가지는 풍성함이 아닌,

소박함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소박함'과 '자율'은 함께 묶인 개념이다.

자율적 삶을 살려면 소박함으로 자신을 지켜야한다.

 

돈주머니가 독립해야 비로소 자립이 되듯

소박함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이를 위해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기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다가 원하는대로 구매하고 소비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삶'보다,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 소비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자연과의 공생 뿐 아니라 사회의 공생을 돕는 구체적 방식이다.

 

 

이러한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에서 출발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 대로 사는 것이고,

출발점부터 내 삶이 아닌데 결론은 내 삶이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