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물레. 핵심을 찌르는 시도

2010. 3. 12. 16:50푸른복지/복지와 인문사회


간디에게 물레란?


간디에게 물레는 단순히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도구가 아니다. 

간디에게 물레는 사람 중심, 공생 중심을 지켜나가는 핵심 무기였다. 


출처; www.temple.edu





첫째, 마을을 기본 사회 단위로 만든다 

마을 단위로 사회가 구성될 때 비로소 공생성이 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을을 벗어날 경우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대로 

마을에서 공동체성은 약화될 것이고, 

이익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마을이 기본 사회 단위가 되려면, 마을의 자급자족적 기반을 만든다.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적 기반의 비율이 줄어들수록 

외부와의 교류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외부와의 교류가 커진다는 것은 

마을 단위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로 인하여 공동체사회(게마인샤프트)에서 이익사회(게젤샤프트)로 이동된다. 


결국 마을 단위가 무너지면, 공생성이 빠르게 해체될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이다. 




셋째, 외부와의 교류는 기본적으로 더 많은 잉여생산을 추구한다.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것은 

소비의 정도를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얼마나 필요한지 어림잡아 예측할 수 있다. 


또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직접 목도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에 걸맞도록 소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즉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와 교류하는 범위가 커질수록 

세계의 수요를 예측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더 많은 잉여 생산을 만들어야 한다. 


각 기업이 재고를 쌓아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고, 

또 외부에서 필요로 하는 것까지 고려해서 

잉여생산을 늘려야 하는 과제를 가지게 된다. 




넷째, 잉여생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기계이다. 


외부와의 교류가 커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기계다. 

자원을 사용하여 기계를 사용할 경우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잉여생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이 단계까지 가면, 

마을 단위의 경제 공동체가 사회가 아닌, 

전세계적 무역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공동체사회(게마인샤프트)에서 이익사회(게젤샤프트)로 이동하게 되고,  

공동체성이라는 것은 그만큼 약화된다.  


여기에 또 기계가 등장하면서 

분절화된 개인은 생산 시스템 안에서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기계에 따른 실업 등의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결국 세계 무역사회, 이익사회 속에서 개별화된 인간은 

기계와 사회 시스템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이용했느냐에 따라  

부를 소유하는 수준이 결정되고, 

이러한 부는 매우 편중되어 분배된다.  


이로 인하여 개인의 삶은 매우 양극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부의 편중으로 인해 

경쟁에서 도태된 저소득 사람의 경우 

인간적 최소 수준의 삶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기계로 인한 불평등한 세계 무역 사회에 대한 대안 : 물레


이러한 흐름에서 무엇을 공격해야 할 것인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고, 

사회가 공생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간디의 대안은 바로 '물레'다. 





마을이 외부와 교류해야 하는 이유는 욕구를 채우기 위함인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방법은 

첫째, 필요(Need) 이상의 욕구(want) 추구를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진정 필요한 만큼만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욕구가 아닌 필요의 수준으로 자신을 절제하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자급자족함으로 

외부와의 교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즉 소박한 삶을 살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즉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 때 


외부와의 교류의 필요성도, 

외부와의 교류 속에서 불평등의 구속도, 

기계 사용의 필요성도 사라지게 된다. 


이를 통해 세계 강대국의 식민화, 자원화도 막을 뿐 아니라, 

기계 사용에 따른 실업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실업의 문제가 해결되면, 이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리고 이는 마을 단위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마을 단위의 삶을 유지할 때 

사람을 사람다워지며, 

타인과 공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간디에게 물레라는 것은 

단순히 소박한 삶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 무역 중심으로 인한 사람과 공생성의 퇴화를 막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이었다. 


물레를 통해 

마을이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고, 

마을을 지킬 수 있다면, 사람과 공생이 살아날 수 있다는 기반이 생긴다고 보았다. 



전문가의 역할

마을 단위로 공동체사회를 유지하고, 

소박한 삶을 목표로 자급자족하는 사회를 목적으로 할 때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는 역할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마을 공동체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가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전문가가 아닌, 

마을 주민이 누구나 자기 주변의 것으로 흔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이다. 


치료를 예를 들면, 치료 전문가는  

물, 흙, 음식 등 평상시 일상의 것으로 자연치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지역주민에게 알려주는 역할에 핵심을 두는 전문가이다. 


결국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전문가의 역할 또한 다르게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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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간디의 글을 읽고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간디의 글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인도는 간디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점차 세계 무역의 중심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산업화를 선택하였고, 세계 무역의 중심으로 이미 들어왔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가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는 선이고, 현재는 악이다라는 식의 

쉬운 이분법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문제라 봅니다. 


지금 당장 간디의 주장대로 

다 가내수공업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적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떠한 과정을 거쳐 사회가 이렇게 흘러왔는지 살펴보고,  

특히 산업화와 마을단위 사회 사이에서 국가의 장래를 선택할 수 있었던 시기에 

간디가 제시한 대안을 만들어간 기저의 가치와 논리를 찾아보기 위해 정리한 글입니다.  


간디가 제시한 기저의 가치와 논리를 통해 

지금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회사업은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지 

그 실마리를 찾고자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