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0.04

2010. 8. 16. 20:17모음집/복지포지셔닝

20 VS 0.04


 

그러므로 승병은 일(鎰 - 스무 냥)로서
수(銖 - 한 냥의 24분의 1)를 비교함과 같고,
패병은 수로써 일을 비교함과 같다.
승리자가 백성을 전쟁에 동원하면
마치 막아 둔 물을 터서 천 길 계곡으로 쏟는 것과 같다.

이래서 선전자는 승산이 확실한 뒤에 전쟁을 하고,
패배자는 덮어놓고 전쟁을 시작한 뒤에 승리를 바란다

손자병법 군형편

 

 

 

폭포를 손으로 막으랴?
손자가 보기에 승자는 20냥을 가지고 있고, 패자는 한 냥의 24분의 1 즉 0.04냥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 본 것입니다.

20냥과 0.04냥! 누가 이기겠습니까?

승자는 20냥을 가지고 있으면서 0.04냥과 겨루는 셈이고, 패자는 0.04냥을 가지고 있으면서 20냥과 겨루는 셈이라 이야기합니다.


또 승자는 그 형세가 패자의 것보다 월등하여 마치 천 길 골짜기로 쏟아져 들어가는 형세에 비유합니다.

이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천 길이나 되는 골짜기로 수많은 군사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이를 막아설 수 있겠습니까?

떨어지는 폭포수를 손바닥으로 막는다고 막아집니까?

바보가 아닌 바에야 20냥이 이긴다고 할 것입니다.

손자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믿고 싶지 않아도 냉혹한 현실입니다. 힘 센 자가 이기는 법입니다.

노력해서 될 일이 있고, 되지 않을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20 VS 0.04의 싸움은 이미 승부가 갈린 셈입니다.

 

 

이상한 전략
짐승도 자신보다 힘 센 상대를 만나면 도망갈 줄 아는 법입니다.

그런데 복지계에는 이상한 전략이 팽배합니다. 


지금 사회복지계는 각 영역별로 새로운 경쟁상대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입니다.

말 그대로 20 VS 0.04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20이면 좋겠지만, 제가 보기에 반대인 듯싶습니다.

 

마치 폭포 아래 물줄기를 세차게 맞고 있는 형국입니다.

복지계 내부에서도 이렇게 해서는 과연 우리의 역할이 남지 않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20을 대항하여 싸우는 0.04인 복지계가 취하는 전략은 매우 이상합니다. 

핵심을 벗어난 전략이 난무합니다.

 

 

첫째, 무조건 열심히 일 하자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누군가 인정해 주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시각각 사회가 변화하고 경쟁상대가 속출하고 때로는 폴더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세상 앞에서도

오직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 승부를 보자는 격입니다.


제가 지적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라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재정도 없으면서, 전략도 없으면서 일단 덮어놓고 싸우고 보자는 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방향도 없이 전략도 없이 무조건 열심히 일하자?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 환경이야 어떻게 바뀌든, 어떤 경쟁상대가 오든 열심히 일하다보면 어떻게 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기관이 추구할 정체성과 방향, 이에 따른 전략이 무엇이냐 물으면

그런 것 없이 “열심히 일하자! 야근하자! 열정을 불사르자!” 외칩니다. 
글쎄요. 이로써 저는 승부 특히 패배를 미리 압니다.

 

 

둘째, 전문가가 되자고 합니다.

전문가가 되어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모두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야 필요성을 인정받는 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전문가가 되면 인정받을까요?

전쟁은 힘의 대결인데 전문가라는 속성이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까요?

 

힘의 논리로 보면 이는 앞뒤가 뒤바뀐 것입니다.

순서가 틀린 것입니다.

전문가가 되면 필요성을 인정받는다구요? 글쎄요.

 

그럼 여러분께 여쭙겠습니다.

전문가가 되면 인정받을까요?

아니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면, 비로소 남들이 전문가라고 불러줄까요?

 

여러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전문가가 되면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역할을 하면 남들이 전문가라 불러주는 것입니다.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를 기록하는 것이지, 역사에 기록한다고 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의사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사회적 재가를 받을까요 아니면 해당 영역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나니 전문가라고 불리는 것일까요?

교사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사회적 재가를 받을까요 아니면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니 전문가라고 불리는 것일까요?

CEO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사회적 재가를 받을까요 아니면 그 필요성이 인정받으니 전문가라고 불리는 것일까요?


전문가가 필요성을 보장한다면 굴뚝 청소의 전문가는 어디로 갔을까요? 굴뚝이 없어지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전문가가 필요성을 보장한다면 필름 제작 전문가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를 몰아내는데 필름 제작 전문가가 단지 전문가이기 때문에 필요성을 인정받을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까?

 

오판하지 마십시오. 전문가 논쟁은 실용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가 논쟁을 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신경 쓰십시오.

 

타 분야와 비교하여 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투자하십시오.

그러면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받게 되고, 사회적 재가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남들이 전문가라 불러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이치는 이러한데 복지계는 ‘전문가’에 목매고 있는 듯 보입니다. 
글쎄요. 이로써 저는 승부 특히 패배를 미리 압니다.

 

 

셋째,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일, 역할을 해야 하고, 더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필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역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면 그것을 모두 다 충족시켜야 한다고 겁도 없이 이야기합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를 무한 만족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면 다 해준다는 것!

이게 가능할까요?

 

어느 날 수퍼맨이 사회복지사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강사님께서 사회복지사가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자질을 열거해 주셨습니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 잘하는 언변을 높여야 하고, 상담도 잘해야 하고, 인간관계도 넓어야 하고, 치료 능력도 있어야 하고, 컴퓨터 활용 능력도 높여야 하고, 홍보 능력도 뛰어나야 하고, 미디어 활용능력도 높여야 하고, 대인 관계도 좋아야 하고, 계획서도 잘 써야 하고, 외모도 호감 있어야 하고, 기동력도 있어야 하고, 법률도 잘 알아야 하고 등등…….

 

이런 이야기 듣다 슈퍼맨이 이렇게 외치며 달려나갔습니다.

“이런 젠장. 나 사회복지사 안 한다! 뭐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으냐? 너나 해라. 나는 사람들이나 구하러 갈랜다.” 

 

도대체 그 많은 것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물론 자기 개발을 게을리 해도 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하지만 슈퍼맨이 되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면 도대체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마 우리 중 대다수는 인정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쩌면 수퍼맨도 포기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사회복지사는 슈퍼맨이 되어라!
슈퍼맨이 되어야 인정받는다?

즉 고객이 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충족시켜야 한다?
글쎄요. 이로써 저는 승부 특히 패배를 미리 압니다.